
영화 ‘원스(Once, 2007)’는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음악 영화입니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나 음악적 성공담을 넘어서, 이 작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연결’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감각적으로 풀어낸 걸작입니다. 특히 2020년대에 들어 다시금 ‘힐링’, ‘위로’,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받는 지금, OTT 플랫폼을 통해 원스를 접하는 새로운 세대에게도 이 영화는 여전히 강력한 공감과 울림을 선사합니다. 정교하지 않은 카메라 워크, 평범한 거리와 일상, 대사보다 노래가 많은 구성—all of these—이 영화가 가진 진짜 매력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감, 감정, 여운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원스를 다시 보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공감: 평범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
‘원스’는 스토리 자체가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남자(글렌 한사드)와 여자(마르케타 이글로바)가 더블린의 거리에서 만나 음악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남자는 진공청소기를 고치며 생계를 유지하고, 여자는 꽃을 팔고 어린 딸을 돌보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스타가 되려는 꿈을 가진 뮤지션이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음악은 그저 마음의 언어가 되어버린 삶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 서로에게 공감합니다. 이 공감은 단지 극 중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관객 또한 그들의 삶에 녹아든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실패한 사랑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떠올리며, 또 누군가는 어떤 형태로든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라며 이야기 속에 자신을 투영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원스가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화려한 장치나 기교 없이도, 진심 어린 목소리와 눈빛, 그리고 낡은 기타 한 대만으로도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것. 특히 영화 초반, 남자가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며 부르는 ‘Say It to Me Now’는 그의 내면 깊숙한 분노와 절망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관객은 그저 한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진짜 마음’을 마주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정서로 이어지며, 우리가 타인의 진심을 듣고 이해하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그 공감의 순간들은 이 영화가 단순한 음악 영화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섬세한 탐구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감정: 말보다 음악이 더 많은 것을 전하는 순간들
‘원스’는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 독특한 영화입니다. 대부분의 감정선이 대사보다 음악을 통해 드러나며, 이는 영화의 가장 큰 미학적 특징이자 장점입니다. 일반적인 영화는 갈등, 사랑, 오해, 해소 등의 감정 흐름을 대사와 연출로 풀어가지만, 원스는 그런 전형을 과감히 비틀고, 음악이 주인공들의 ‘마음’ 그 자체로 기능하도록 만듭니다. 이는 한 곡 한 곡이 단순한 삽입곡이 아닌, 이야기의 일부로 작용하게 하며, 보는 이의 감정을 깊이 흔들어 놓습니다. 대표곡 ‘Falling Slowly’는 이 영화의 상징이자, 극 중 남녀 주인공이 처음으로 함께 연주하는 곡입니다.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그 장면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아닌,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둘 사이에 아직 아무런 로맨틱한 대사나 행동이 오가기 전임에도, 그 음악만으로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깊이를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연출됩니다. 이렇듯 음악은 이 영화에서 감정 그 자체입니다. 또한 영화 후반부의 ‘If You Want Me’, ‘When Your Mind’s Made Up’ 등의 곡들은 각 인물의 내면 변화를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노래 가사 속에는 사랑, 갈등, 외로움, 미련, 책임감 같은 다양한 감정이 겹겹이 녹아 있고, 이는 마치 시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를 때의 눈빛, 표정, 침묵마저도 대사보다 훨씬 강력한 감정 전달 수단이 됩니다. 이처럼 원스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결하게 표현하고, 그 여백을 음악으로 채워 관객의 상상력과 감정선을 자극합니다. 이런 연출 방식은 오히려 관객이 더 능동적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하며, 감정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방식으로 전달됩니다. 바로 이 점이 원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여운: 사랑보다 더 깊은 ‘관계’의 의미
원스는 로맨틱 영화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를 따르지 않습니다. 주인공 남녀는 서로에게 분명한 끌림과 감정을 느끼지만, 결국 연인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함께한 시간’이 주는 의미와, ‘관계의 다양성’에 주목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연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짧은 만남이 평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남자는 여자를 위해 피아노를 선물하고 떠나고, 여자는 가족 곁으로 돌아갑니다. 둘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잊지 못할 영감을 남깁니다. 이 엔딩은 많은 관객에게 강한 여운을 남기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이해’, ‘지지’, ‘응원’—을 깊이 새기게 합니다. 이 여운은 단지 서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은 음악을 다시 듣게 되고, 가사를 곱씹게 되며, 그때의 장면과 감정을 되새기게 됩니다. 원스의 OST는 단순히 영화의 부속물이 아닌, 영화 그 자체의 감정을 간직한 채 관객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그 음악들은 가끔 우리의 인생 어느 순간과 겹쳐지며, 문득 다시 꺼내 듣고 싶은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원스는 ‘사랑은 반드시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가 누군가와 맺는 관계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오히려 미완의 관계이기에 더 아름답고, 그 여백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진정한 ‘성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랑보다 더 넓은 인간관계의 본질,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감정의 깊이를 여운으로 남기며 끝납니다.
‘원스’는 거창하지 않은 이야기와 음악으로,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하는 영화입니다. 다시 보고, 다시 듣고,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그 감정의 결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습니다. 지금 다시 보는 원스는, 음악을 통해 삶을 나누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말 없는 위로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닿고 있습니다.